1985년은 와인의 역사에서 암흑의 시대였다. 와인에 부동액이 혼합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대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T 선생은 “이 일로 한 병에 10만 원을 훌쩍 호가하던 와인을 만 원짜리 한두 장으로 맛볼 수 있었다.”라면서, 자신에게는 지옥이 아닌 천국의 나날들이었다고 회상하고는 했다.

‘와인 스캔들’도 이때의 대소동이 계기가 되어서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저자인 프리츠 할가르텐은 와인상의 집안에서 태어나서, 와인과 관련된 법적 소송 등을 전문하는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보아 온 경험과 지식 등을 바탕으로 해서 와인을 둘러싼 갖가지 문제들을 법조인 특유의 냉철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국에서도 외국 농산물(특히, 중국산)이 한국산으로 둔갑술을 부려서 사회적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와인의 세계에서도 제품의 라벨을 바꿔서 산지를 조작하는 간단한 방식부터 물을 넣어서 양을 늘리거나 낮은 질의 와인을 섞거나 약품 등을 첨가하거나 하는 등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모든 부정이 행해진다. 이 책은 그런 부정과 사기의 종합 선물 세트를 하나하나 풀어서 파헤치는 과정이 시시콜콜할 정도로 서술되어 있다.

돌이켜 보면, 고대 로마시대부터 와인은 인간이 마실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가는 역사의 산물이었다. 너무 신맛이 강해서 도저히 마실 수 없는 와인에 꿀을 넣어서 마셨다는 기록조차도 남아 있다. 와인의 역사 자체가 부정(무엇인가를 첨가하거나 배합하는 일)과 창조(그러한 첨가물로 말미암아 마실 수 있는, 혹은 즐길 수 있는 제품의 탄생)의 과정이었다.

무엇인가를 첨가하거나 그 비율을 조절해서 최상의 맛을 추구하는 것은 연금술과 같다. 값싼 비금속으로 귀금속을 만들려고 한 연금술적인 사고방식처럼 꿀을 대신해서 와인에 넣을 무엇인가를 찾았다. 갖은 시행착오 속에 이러한 인간적인 착상은 마침내 인체에 해로운 부동액인 다이에틸렌 글리콜 등을 첨가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어느 세계나 그렇듯이 와인의 세계에서도 그레셤의 법칙은 통용된다. 제대로 만들어진 최상품은 물론이고, 부동액 등이 첨가된 와인도 애주가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은 와인만이 아니라 술이 가진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술은 숙성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희대의 명주로서, 미주로서 명성을 얻고 있다.

인간이 “썩힌 포도를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라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부터 시작된 만고불변의 진리다. 단지, ‘썩힌다’는 부정적인 단어 대신에 ‘숙성’이라는 그럴듯한 단어를 만들어서 갖다 붙였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술은 원래부터 마술의 세계가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로부터 마술과 현실의 범죄 사이의 경계는 모호했고, 지금도 그렇다.

예를 들면, 가장 위대한 와인이라는 극찬과 함께 가장 비싼 와인 중의 하나인 로마네 콩티도 당분을 첨가해서 도수를 유지함으로써 중후하고 깊은 맛을 내고 있다. 와인에 첨가하는 것이 당분이나 꿀 등이면 백마술로 받아들여지고, 반면에 부동액 등은 흑마술의 세계로 취급된다.

또한, 인간에게 유해함이라는 기준으로 본다면, 당분 등은 합법적이고, 부동액 등은 비합법(범죄)이다. 결국, 인간은 와인의 세계를 크게 두 가지로 인식하고 있다. 하나는 백마술과 흑마술로 상징되는 선악의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유해함을 기준으로 한 합법과 비합법의 세계다.

그렇다면, 합법과 비합법, 혹은 백마술과 흑마술로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

합법과 비합법은 위에서도 쓴 것처럼 인체에 해로운 물질이 첨가되었는지 여부에 따라서 판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해로운 물질의 첨가라는 한정된 부분만으로 범죄 여부를 판가름한다면, 다른 부정들 - 예를 들면,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상표를 바꿔치기하거나 유명한 상표를 비슷하게 도용하거나 인체에는 유해하지 않은 물질을 첨가하는 행위는 면죄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일전에 어린이들의 간식으로, 또한 어른들도 마음껏 먹고 있는 과자에 유해물질이 포함되어 있다는 K 방송국의 보도로 과자는 한 편의 공포물이 되었다. 결국, 식약청은 과자의 첨가물이 안전한지 어떤지를 조사하였고, “아토피성 피부염과 첨가물의 상관관계를 확인할 수 없다.”라는 조사 결과를 2007년 1월에 발표했다. 이에 K 방송국은 ‘과자의 공포 그 후 1년, 식약청 발표 믿어도 되나’를 통해서 정면으로 반박에 나섰다. 눈 감고 아웅 하는 고양이는 어느 세계나 자본과 함께 한다.

또한, 다른 M 방송국은 우리가 시켜 먹고 있는 자장면에 엄청난 양의 화학조미료인 MSG가 들어가 있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자장면도 와인의 세계와 마찬가지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자장면 자체가 아닌 MSG에 길들어 온 것이다. 어디까지 합법이며 어디까지가 비합법일까?

흑마술과 백마술도 합법과 비합법의 경계는 오리무중이다. 어떠한 표식도 없는, 게다가 짙은 안개로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국경지대가 흑마술과 백마술의 경계인 동시에, 합법과 비합법의 경계. 그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고 있다.

이것은 와인 등과 같은 술만이 아니라 그림 등 모든 예술이나 사회 등과 같은 조직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법의 세계에서 본다면, 임꺽정이나 산적 등은 범죄자이며 자신이 지배하는 지역 내에서 생산되는 모든 산해진미를 독차지하는 왕과 관리 등은 합법이다.

술이란 것 자체가 사실 비합법적일 터. 최근 연구에서는 적당한 양의 와인을 매일 섭취하면 건강에 좋다고 한다. 그러나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못한 것이 술의 세계이다. 술 자체가 인체에 해로운 음료인 것은 분명하다. 합법과 비합법은 근본부터 동전의 양면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과 악은 절대적일까? 임꺽정은 선일까? 아니면, 악일까? 도둑의 대명사인 뤼팽은 선일까, 악일까?

연금술적인 마술의 세계에서 자행되고 있는 부정에는 악덕과 유쾌함이 공존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마술의 주요한 무대인 예술 - 특히, 그림이나 조각 등의 위조품은 돈벌이를 위한 악질적인 사기극(악행)인 경우도 있지만, 금전적인 욕망이 아닌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는 부분(유쾌함)도 분명히 존재한다.

제대로 배우지 못하거나 명성을 얻지 못했을 뿐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자신의 예술가적인 재능을 나타내기 위해서 과거의 명성을 모방하기도 하였으며, 주요한 소비층인 귀족이나 부자들의 허영과 보잘것없는 안목을 비웃거나 하는 유쾌한 사기꾼들은 악덕 장사치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그들이 만들어 낸 흑마술 중에는 진품 이상의 예술적 가치를 보이는 작품들조차도 존재할 정도다. 결국, 선과 악, 혹은 합법과 비합법은 이현령비현령이다.

우리는 MSG 등이 듬뿍 들어간 자장면은 “먹는 거로 장난친 것”으로 간주한다. 먹을 수 있는 자장면과 몸에 해로운 MSG라는 독이 들어간 음식으로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부동액이 들어간 와인은 독주이며 당분 등이 포함된 와인은 마실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흑마술은 오로지 범죄이고, 반대로 백마술은 합법이다.

하지만, 프리츠 할가르텐은 합법과 비합법이 아닌 선과 악의 개념으로 와인과 관련된 각종 사기극에 접근하고 있다. 먹는 것 하나에도 잔소리가 많은 이들에게는 불만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접근을 선과 악이라는 흑백이 아닌 유럽 특유의 연금술적인 생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 책은 마지막까지 읽는 즐거움을 배신하지 않는다.

최근 한국에서도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고급스러운 이미지의 산물임은 부정할 수 없다. 한적한 유럽의 전원 마을의 포도밭의 정경이 떠오르는 와인이지만, 호수 위의 고니가 수면 아래에서 필사적으로 발 운동을 펼치듯이 보이지 않는 잎사귀 위나 흙 속에서는 각종 부정과 사기가 행해지고 있다.

이런 부정과 사기는 와인만이 아니라 모든 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법. 돈만 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